본문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EPISODE 1 트럼프 가늠구멍 속 출렁이는 한국경제

환율전쟁

///

CURRENCY WAR

“중국과 일본보다 한국과 대만이
최악의 환율 조작국(worst offenders)이다.”
- Financial Times, 2017.2.13
영국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2월 13일(현지 시각) 이 같은 부제를 단 기사를 냈다.
환율조작국 단골 손님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중국과 일본보다
한국이 환율을 조작했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화들짝 놀란 정부와 한국은행은
“해당 기사는 사실을 왜곡했다”며 즉시 항의 서한을 보냈다.
환율 조작국 변방에 있던 한국이 환율 전쟁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EPISODE 1

트럼프 가늠구멍 속 출렁이는 한국 경제

미국·유럽서 환율조작국으로 한국 거론…2가지 조건 충족

송준영 기자 song@sisajournal-e.com

환율전쟁은 미국의 위기감에서 시작했다.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중산층이 무너진 것이다. 소득이 정체됐고 양극화는 심해졌다. 미국 경제를 이끌던 러스트벨트는 이제 몰락의 상징이 됐다. 월스트리트는 세계 경제 파탄의 주범으로 몰렸다. 오로지 세계 최대 군사 강국이라는 자부심이 미국을 지탱할 듯하다. 이 와중에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46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적자를 미국 중산층 쇠퇴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미국내 일자리 감소와 내수 악화를 무역 상대국의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 탓이라 여겼다. 그리고 이를 공정 경쟁이 아닌 환율 조작 등으로 만들었다고 결과로 판단했다. 예컨대 ①무역 상대국이 자국 화폐 가치를 낮춘다 ② 수출품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미국 시장에서 미국 기업 점유율을 잠식한다 ③ 미국에서 거둔 이익은 일자리 창출, 설비증설 등에 재투자하지 않고 자국 일자리를 늘리는데 사용한다로 도식화할 수 있다.

미국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소(EPI) 소속 로버트 스콧 연구원은 1월31일 보고서에서 ‘미국은 2001~2015년 대 중국 무역적자 증가 탓에 340만 일자리를 잃었다’고 주장했다. 이 기간 미국의 대 중국 무역적자는 4832억달러로 4배 이상 늘었다. 이에 미국무역대표부(USTR)도 3월 1일(현지 시각) 올해 무역 정책 의제와 방향을 담은 연례보고서인 ‘2017년 무역정책 어젠다’에서 “여러 무역 협정에 대한 접근법을 심각하게 재검토할 때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격 대상 1순위로 중국을 꼽았다. 그는 2월 23일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중국을 ‘환율 조작의 그랜드 챔피언’이라고 비꼬았다. 지난 1월초에도 트위터에 중국이 일방적 무역거래로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돈을 가져가면서도 북한 핵문제 해결을 돕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후보 시절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은 엄청난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은 2015년 총 7371억달러 무역적자를 냈다. 이 중 절반 가량(3657억달러)이 중국과 교역에서 발생했다. 1998년엔 미국 무역적자 24.3%가 중국과 교역에서 생겼다. 대 중국 무역적자 규모가 크게 확대된 것을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안화의 인위적 평가절하 탓에 무역적자가 늘었다고 판단한다. 중국이 환율시장에 개입해 위안화 평가절상을 막고 자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였다고 주장한다. 1990년 달러·위안 환율은 달러당 4.7위안 수준이었다. 하지만 위안화 가치가 급격히 내려가면서 2000년 달러·위안 환율은 달러당 8.2위안, 2017년 3월11일 달러당 6.9위안 수준에 머물러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독일도 비슷하다고 보고 있다. 일본은 중국에 이어 미국의 두번째 무역적자국이다. 독일도 트럼프 정부의 타겟이다.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은 독일이 유로화의 저평가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비난했다.

‘환율의 미래’ 저자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트럼프가 이처럼 환율 전쟁을 선포할 수밖에 없는 데는 대통령 선거 승리에서 찾을 수 있다. 트럼프는 이른바 스윙스테이트(swing state·정치성향이 뚜렷하지 않은 경합주)인 펜실베니아, 오하이오 등 미국 중북부 지역에서 승리를 거뒀다. 모두 제조업이 발달한 곳이지만 지금은 퇴색해서 실업으로 고통받는 지역”이라며 ”트럼프 정부는 달러 약세를 유도해서 수출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미국 제조업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밝혔다.
인터뷰
영상
전체보기

한국 숨통 죄는 환율 전쟁···“관람자 아닌 참여자”

한국이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월 23일 금융통화위원회 정례 회의를 마치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환율 조작국에 한국도 지정 되는거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발효된 미국 교역촉진법에 따르면 한국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한국이 최악의 환율조작국이다’는 요지의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대해 “보도 내용은 분명히 논리도 부족하고 사실과도 거리가 멀었다”고 평가했다. 2월 16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14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낸 반박문에서도 “국제통화기금(IMF) 한국 보고서와 미국 재무부 환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환율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주장과 달리 사정은 여의치 않다. 미국 교역촉진법 상 환율조작국 지정요건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지난해 10월 미국 환율보고서를 토대로 보면 중국은 한 가지 조건(대미 무역흑자 200억달러 이상)에만 해당한다. 한국은 두 가지 요건(대미 무역흑자 200억 달러 이상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3% 이상)이 걸려있다.

노무라증권은 올해 한국의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은 5.8%로 지난해(7.1%)보다 낮아질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미국이 한국 원화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2월 1일 미국 금융정보·뉴스 서비스 업체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윌리엄 클라인 선임 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환율전쟁 다음 타깃으로 캐나다와 멕시코, 그리고 한국이 유력하다”고 발언했다.


미국은 환율 조작국 선정 기준으로 ▲대미 무역흑자(현재 기준 대미 흑자 200억달러 초과), ▲상당한 경상흑자(GDP 대비 경상흑자 3% 초과) ▲지속적 일방향 시장 개입(GDP 대비 순매수 2% 초과)을 들고 있다. 이 요건에 해당할 경우 환율조작국(심층분석 대상국)에 지정한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1년간 환율을 정상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환율이 정상화하지 않으면 미국 조달시장 참여 금지 등 다양한 무역 제재를 받게 된다.

특히 미국과 유럽 등 교역 상대국은 위기에 빠질 때마다 한국의 무역흑자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바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한 지 2년 뒤인 2010년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이래 일본 엔화는 29% 절상된 반면 한국은 아시아권에서 달러 대비 통화가치가 하락한 유일한 나라”라 지적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한국은행이 시중은행의 외환거래를 검사하는 것은 원·달러 환율 하락을 막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고 보도했다. 미국 무역적자가 심화됐던 1988년에는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바 있다.
한국은 지난해 987억달러 경상수지 흑자를 냈다. 19년 연속 흑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원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춰 흑자를 내고 있다고 판단한다. 이에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하는 한 언제든지 주요 교역상대국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LG경제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등 경제 연구소는 주요 교역상대국들이 한국을 환율조작국에 지정할 가능성이 있다며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본부 국제금융팀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래 한국 환율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한·미간 안보동맹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고 있어 환율조작국 지정 위험은 이전에 비해서는 줄고 있다”면서도 “다만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한국도 포함될 수 있어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PRODUCTION

기획 이철현
취재 송준영 이용우 배동주
촬영·편집 권태현 차여경
디자인·개발 김태길 조현경 케이비시스
TOP